나의 첫 타투였다. Que sera sarah. 스페인어였나? 이탈리아어였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직역하자면 될 대로 되라라는 뜻이지만, 신(운명)의 인도하심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나름의 다짐으로 목뒤에 새겼다. 아빠의 죽음 이후에 삶을 계획하는 것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삶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겠다 다짐했던 나의 첫 타투이다.
Que Sera Sera 이지만 영어이름 Sarah를 바꿔, 나만의 타투 도안과 의미를 부여했다.
2022년에는 매주 글쓰기를 하겠다며 다짐했건만, 삶이 흘러가는 대로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모르는 남자와 인연에 그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100일이 지났다. 나는 그를 만나고 나와의 약속을 잊어버린 채 오늘까지 글을 쓰지 않았다. 참 비슷한 듯하면서도 성격도, 삶의 규칙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얽히고설킨 인연을 100일 동안이나 이어왔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를 집에 돌려보내고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다.
개인적으로 어떤 연애도 정답이 없고, 보기 좋은 연애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오늘은 조금 고민이 된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연애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말이다. 거리 감 없이 매일같이 만나며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투닥거리며 싸우는 이 연애가 맞는 걸까? 연애를 안 할 땐 그토록 연애가 하고 싶었는데, 과연 내가 연애를 하기에 적합한 사람인가? 요즘 내게 수십 번 물어본다.
그와 나는 결정적으로 소비 습관과 생활 습관이 다르다. 비용보다는 효율을 더 먼저 생각하는 나와 달리, 그는 100원 단위로 물건을 재고 따지며 조심스러운 소비 습관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나의 소비 습관이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아무리 급해도 콘돔은 절대 편의점에서는 사지 않는 그의 소비 습관을 가끔은 받아들이기가 힘들 때가 있다.
오늘은 그가 그동안 준비했던 것을 플리마켓이 선보이는 그에게는 나름 큰 행사를 치른 주말이었다. 우리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마켓을 준비했고 고된 주말이 끝이 난 오늘 거하게 회식을 하기로 했는데, 밖에서 바람 쐬며 데이트하고 싶다는 그는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종일 고생했으니 집에만 있고 싶다는 나의 의견과 충돌하여 다투게 되었다.
내가 먹고 싶은 메뉴는 딱 두 가지였다, 늘. 파스타와 연어 초밥. 그는 배달시키더라도 파스타는 먹을 수 없다. 원가가 너무 싸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메뉴이기 때문이다. 연어는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가격이 많이 올랐다. 결국 두 메뉴 다 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둘 다 고생했으니 오늘만큼은 비싸지만 기분 내며 먹자고 했다. 하지만 긴 실랑이를 이어가기엔 나는 월요일 출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고, 한 주를 잘 시작하기 위해 그와 함께 있는 것보다 쉬는 것을 선택했다.
윤여정이 새로 시작하는 예능을 보며 혼자 파스타를 시켜 먹었고, 밀린 빨래와 청소를 했다. 그게 나에게는 휴식이자 쉼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정돈되어야 비로소 안정이 든다. 과연 그는 마켓 준비를 하느라 난장판이 된 집을 치웠을까?
원래 연애는 다 이렇게 하는 건가? 과연 그와 내가 200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1주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남들이 보기엔 귀엽다며 웃고 넘어갈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또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흘려 넘겨본다. 될 대로 돼라.